이르쿠츠크, 리스비앙카, 바이칼, 울란우데

 

드디어 기차에서 내릴 수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새벽 6시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니 아직 체크인까지 6시간이나 남았다. 다행히 숙소는 기차역에서 20분 거리로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맡으며 천천히 걷는다. 가끔 옆으로 트램이 지나가고 난 구글맵을 보면서 숙소를 찾는데 근처를 와도 보이지가 않는다. 한 바퀴 돌고 혹시나 해서 골목으로 들어가 보는데 그곳에 숙소가 있다. 여기 있으면 어떻게 찾으라고 러시아는 간판을 걸어 놓은 호스텔을 보기가 쉽지 않다. 6시 반 아직 너무 일찍 인 거 같아 앞에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며 누군가 나오길 기다린다. 기차 안보다 벤치가 훨씬 편하게 느껴지는 게 새삼스레 고맙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멀리서 나처럼 골목을 못 들어오고 숙소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보인다. 난 손을 들어 말해 줄까 했지만 숙소 찾는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망설였는데 전화를 했는지 숙소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전화를 받으며 나간다. 아 이제 씻을 수 있겠구나 싶어 호스트와 낯선 여행객을 따라 들어갔다. 여행객이 체크인하기 위해 꺼낸 여권은 한국 여권이라서 인사를 건넸다. 일주일 만에 한국 사람을 본 것이라 정말 반갑게 인사를 하니 한국 사람이냐고 놀라신다. 지금 내 몰골로는 절대로 한국인처럼 나도 안 보이니까 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여기 며칠 묵냐고 하길래 5일이라고 하니 너무 길다고 방을 잡아놨다고 여기 취소하고 울란우데까지 가는데 같이 움직이자고 한다. 지친대로 지친 난 계획잡는걸 잠시 미루고 편하게 다녀보자 하고 같이 가기로 한다.

호스텔에 하루만 체크인하고 씻고 잠은 안 자고 바로 따라 나간다. 하루 묵을 방에 갔는데 원룸 한 채를 렌트한거다. 울란우데 기차표를 끊으러 기차역에 가신다고 해 난 또 기차를 타기는 싫었지만 인터넷으로 예약했다. e티켓을 기차표로 바꾸고 다음 날 아침에 리스비앙카 바이칼을 가자고 해서 주위 택시 기사한테 물어보니 버스터미널로 가야 된단다. 일단 마트에서 물과 먹을 거를 사고 숙소에 들어와 러시아 소시지로 안주를 만들고 술한잔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분은 사업차 오신 분이다. 일 년에 서너 번 오신다고 하니 잘 따라다니면 많이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낼 리스비앙카를 가기 위해 인터넷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집주인한테 체크아웃한다고 전화를 했다. 젊은 청년이 올라와 자기가 집주인이라고 한다. 열쇠를 주고 혹시나 해 리스비앙카를 갈려고 하는데 버스터미널까지 차로 태워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택시 타라고 한 번에 거절한다. 난 택시비 줄 테니까 짐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다고 꼭 좀 부탁한다고 하니 못 이기는 척 그럼 얼마 달라고 한다. 어차피 택시비도 부르는 게 값이니 그거나 이거나 짐도 무겁고 바로 난 오케이 하고 옆에 형님께 말씀드리고 청년 차에 올라탔다.

버스터미널에서 9시에 미니 버스에 타고 리스비앙카로 향했다. 1시간 15분 정도 지나면 도착하는데 운전사들이 엄청난 속도로 운전한다. 버스 창밖으로 서서히 바이칼 주변 풍경이 펼쳐지고 맑은 물이 끝없이 보이고 그 뒤로 병풍처럼 설산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마치 그림엽서 같은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고 보고 있다. 차에서 내려 바로 호수 옆으로 가니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너무 아름다웠다. 여기선 이걸 생수로 만들어 팔기도 한 단다. 마트에 파는 바이칼생수가 진짜 바이칼 물로 만든 거라니 이 정도 맑으면 팔수 있겠다 싶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르니 거기선 영어로 대답을해준다. 관광지이긴 관광지인가보다 러시아에서 영어를 다 듣다니. 안내원이 전망대가 있다는 말에 거기로 가보기로 했다. 안내원이 지도를 꺼내 표시해주고 버스 기사한테 여기서 내린다고 보여 주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지도를 보여주니 끄덕이면서 도착지에 오면 문을 열어준다. 내려서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스키 리프트가 나오는데 그걸 타고 올라갈 수도 있고 걸어 올라갈 수도 있지만 타고 가는 게 낫다. 생각보다 꽤 올라간다.

전망대에 올라와서 보니 이 또한 절경이다. 엽서처럼 설산에 둘러싸인 호수가 정말 멋있어 보였다. 러시아에 와서 처음 여행지에 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참을 전망대에서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어 내려와 호수 주변을 도는데 훈제 냄새가 온 마을을 진동한다. 오물이라는 물고기라는데 이 지역 특산물이라고 한다. 훈제와 회, 알 등을 파는데 볶음밥하고 생선을 사서 숙소로 들어와 먹는데 식감이 쫄깃하고 꽁치와 비슷한 맛이 난다. 훈제 향이 무지 강하다. 오늘은 리스비앙카에서 하루밤 자고 낼 다시 이르쿠츠크로 간다. 호수에 석양이 지는 모습도 아름답다. 아 근데 호수라서 그런지 춥다. 패딩 입은 사람들도 보이고.

울란우데를 가기 위해 다시 이르쿠츠크로 왔다. 중앙시장 구석에 위치한 몽골식당에 가서 밥을 사 먹었는데 두 번이나 큰 배낭을 매고 들어오니 알아보고 웃는다. 메뉴는 저번에 먹은 볶음밥을 차와 함께 맛나게 먹었다. 울란우데까지 9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제 9시간은 충분히 견딜 만 하고 자다 보면 좀 부족한 시간이기까지 하다. 이게 적응이라는 건가.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고 또다시 기차를 타고 밤새 달린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벌써 울란우데에 도착, 새벽부터 회사 직원분들이 기다리고 있다. 차를 타고 중간에 몽골식당에 들러 이상한 곰국 같은걸 먹고 숙소에 왔는데 호텔이 아니라 그냥 여인숙 느낌이다.

짐을 풀고 좀 쉬다가 울란우데 관광을 시작하려는데 직원분이 여긴 반나절이면 다 본다고 한다. 시내로 나오니까 걸어서 관광을 할 수 있는 코스가 표시되어있고 이걸 따라가면 다 볼 수가 있게 되어있다. 표시를 따라 걸으면서 이것저것 여느 도시나 가면 다 있는 똑같은 건물과 교회 조형물들을 보면서 지나가니 정말 반나절 만에 끝나버렸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시장이 시내에서 가장 볼만한 관광지다. 내일은 다른 곳을 간다고 하니까 기대해봐야겠다.


아침을 대충 때우고 회사 직원분이 구경을 시켜준다고 해서 따라 나왔다. 그분 자녀들과 같이 차를 타고 20분 정도가니 큰 사원이 나오는데 티벳불교 사원으로 안에 들어가니 큰 부처상도 있고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나도 따라 기도를 드리고 나갈 때는 뒷걸음으로 나가야 한다고 한다. 사원 마당은 울란우데 시내가 한눈에 다 내려다 보인다. 티벳 사원을 나와 시내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에 가서 내부를 보려고 했지만 공연하는 것도 없고 해서 그냥 나와 직원분들과 저녁을 먹으러 중국식당에 왔다. 중국인 이민 2세가 이어받아 하는 거라는데 가격도 사고 맛도 있고 괜찮았다. 내일은 울란우데 바이칼 쪽을 간다고 한다. 울란우데를 오는 대부분의 이유가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것인데 이르쿠츠크 바이칼을 보고 기대감에 여기도 찾게 되는 거 같다.

리스비앙카의 바이칼의 반대쪽에 있는 울란우데 바이칼은 해변으로 되어있어 모래사장도 있다.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가면 있는데 혼자 왔으면 절대 못 봤을 거다. 직원분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언덕 위 도로에 휴게소가 있는데 사고 나지 말라고 동전 하나를 차창 밖으로 던진다. 여긴 이런 행위가 진짜 많다. 토속신앙에 대한 믿음도 강한가 보다. 첫 번째 간 곳은 러시아 정교회로 관광객들로 성당 안이 꽉 차서 기도하는 분도 있고 사진 찍는 분도 있다. 난 사진 찍는 쪽이지만 기도도 짧게 하고 나와 출발했다. 30분 정도 달리니 마을이 나오고 하임강이라는 곳에 정차했다. 강 위에 있는 오래된 목조다리는 구멍이 나 있고 건너기가 위태로워 보이는데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관광지로 사용하고 있다. 강과 나무와 다리가 어울려 예쁘기는 한데 다리를 건너는 일은 좀 무섭다. 하임강을 뒤로하고 또 도로를 달려 점심을 먹기 위해 까페에 들려 간단히 요기하고 바이칼로 향했다.

바이칼 근처에 온천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예전 소련 방식의 온천으로 그냥 탕만 있다고 한다. 건물마다 탕만 있고 입장료 내고 들어가고 준비물은 각자 챙겨오는 거다. 온천건물들을 따라 걸어가면 원천수가 나오는 곳을 수도로 연결해 물을 마실 수 있게 해놨는데 엄청 뜨겁다. 손으로 만질 수는 있는 데 오래 버틸 수 있는 온도는 아니다. 온천을 뒤로하고 드디어 도착한 바이칼은 넓게 펼쳐진 해변이 꼭 바다 같은 느낌이었다. 리스비앙카 쪽 바이칼하고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바이칼이다. 호숫물은 리스비앙카보다 맑지는 않아 보이는데 아마 겨울이 끝나가서 그럴 수도 있겠다. 강변의 모래는 고아서 백사장 같은 느낌이다. 바다 같은 호수를 보면 정말 색다른 느낌이 난다.

해변 옆에 모닥불도 피우고 버너로 라면도 끓여 먹고 바람이 심해 추웠지만 정말 즐거운 피크닉을 즐겼다.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한국 라면이 맛있다. 바이칼에서 돌아오는 길에 직원분 아내분이 러시아 분이라서 그분 덕에 부랴티야 공화국 민속촌에 들려 구경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농촌의 풍경과도 상당히 닮아 있었다. 오늘은 그분들 덕에 귀한 경험을 하게 되어 정말 고맙게 느낀다. 여행사를 하신다고 하는데 사업이 번창하길 바라본다. 또 다른 직원분 딸이 생일이라고 해서 거기에 초대받아 갔다. 초대받아 간 곳에서 생일상이 거대하게 차려져 있고 친척분들 아주 많이 와 계신다. 딸 생일잔치를 이렇게 크게 할 줄은 몰랐다. 어른들은 보드카와 와인을 마시고 애들은 뛰어다니고 난 앞에 있는 음식을 열심히 먹었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먹을 기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보드카도 지금까지 마신 보드카에 비해 상당히 깔끔하고 목넘김이 좋았다. 남자들은 술에 건하게 취하고 각자 집으로 가는 시간 집주인은 완전히 취했다. 보드카 4병을 마셨단다. 술은 주인만 따를 수 있고 손님은 잔을 그냥 놓고 술을 받는다. 특이하긴 했지만 재미있는 문화다. 낼 또 이르쿠츠크로 간다.

이르쿠츠크 호스텔에 도착하니 같은 방에 가방들이 보인다. 한국 사람들인 게 확실한 듯 오래간만에 또 다른 한국 여행자들을 본다. 간단히 라면을 사서 끓여 먹는데 학생 3명이 들어온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여기까지 왔단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친구끼리 여행 다니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같이 투숙한 학생들이 리스비앙카를 못 가봤다고 해 난 또 리스비앙카에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버스터미널에서 8시 반 버스를 타고 리스비앙카로 향했다. 이 운전사는 저번 운전사보다 더 빨리 운전한다. 리스비앙카에 도착하니 바이칼 호수가 저번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구름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주 선명하게 보여서 마치 풍경화 같았다. 가게들은 10시에 문을 열고 인포메이션에 가서 이르쿠츠크를 배로 갈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400루블이면 간다고 여기서 한 시간 걸린단다. 버스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데 배가 한 시간이라니 쉽게 상상이 안 가기는 하지만 매일 목요일은 운항을 안 한다고 해서 아쉬웠다.

역시나 시장에서 오물과 볶음밥 이번에는 맥주도 사서 그 친구들과 맛나게 먹었다. 밥을 먹고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1시 버스로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왔다. 잠시 쉬다가 같이 간 형님은 새벽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시고 학생들은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기위해 가고 또다시 나 혼자 남았다. 나도 내일 아침에는 일찍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