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쥬쿠, 지브리

맑은 하늘에 체감온도는 꽤 쌀쌀한 그런 날씨지만 오늘은 미리 예약해놨던 지브리에 가는 날이다. 시내로 나가 지브리에 가기 전에 도쿄도청에서 도쿄지도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 지도에는 매년 1~3월까지는 할인쿠폰이 있기 때문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외국인한테만 허용된다. 도쿄도청에 온 김에 전망대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구경하기에는 정말 좋았다. 멀리 후지 산도 보이고.

사진이 별로인지 눈으로 봤을 때는 잘 보였는데 사진상에는 잘 보이지는 않는다. 짧은 전망대 관람을 마치고 원래 온 목적인 도쿄지도와 쿠폰을 가지러 2층으로 내려갔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데 자원봉사자 한 분이 오셔서 너무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에서 오셨느냐구 물어보시더니 대답할 겨를도 없이 설명에 들어가셨다. 여기서 조금 당황.
난 여긴 일본, 저는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니 바로 일본어로 바꿔 설명을 시작하셨다. 여기서 다시 당황.
하여간 난 한국분이 여기서 자원봉사도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형수가 한국분이 아니라 일본분이라고 해서 한국어 발음이 너무 정확한 것에 또다시 당황하게 하였다.
그분은 짧은 시간 동안에 나한테 세 번의 당혹감을 날리셨다.



자료를 챙겨서 지브리로 가기 위해 나와 지브리 안내종이 한 장을 들고 지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중간에 배가 고프기도 하고 너무 빨리 나와 한 시간이나 여유시간이 남아 KFC에 가기로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가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만 KFC 치킨버거가 이랬나 싶을 정도로 짠맛이 강했다. 뭐 캐나다에 있을 때는 신맛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일본은 짠맛에 적응하기가 쉽지가 않다. 뭐 한 달 정도 지나면 이 맛에 익숙해져 언제나 그렇듯이 음식에 소금을 듬뿍 치고 먹을 수도 있다.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햄버거라 맛나게 먹긴 했다. 감자 칩도 맛나고. 불만을 느끼면서도 정작 나오면 너무 맛나게 먹는 나.

KFC에서 나와 지브리 가는 길로 한 25분 정도 걸어가면 멀리 지브리 건물이 보인다.
가는 길은 좁고 복잡하고 차도 많이 다니고 하지만 뭔가 규칙이 있듯이 잘 다닌다. 그 길옆으로 라면집이 정말 많았고 선술집도 꽤 있었는데 선술집에서 구워지고 있는 꼬치는 정말 맛있어 보였다. 꼬치에 생맥주 한잔이 너무 당기는 순간이다. 대낮부터.
눈길을 길로 돌려 부지런히 다시 지브리로 향해 갔다.

지브리에 도착하면 처음 반기는 것이 거대 토토로 인형이다.
유리창당 너머에 있는 토토로 인형은 내가 토토로를 보고 있는 건지 토토로가 날 보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만화에서 바로 나와 있는 듯 생동감이 느껴졌다.
토토로를 보고 얼른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표를 들고 정문으로 갔지만, 관람 입장시간은 딱 정해져 있었다. 또다시 30분 정도 기다려야 해서 주위 공터에 가서 휴식 겸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섬나라의 바람은 역시나 너무 춥다. 햇볕은 따뜻한데 바람이 그 햇볕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낙엽으로 가득하여 있고 바람은 계속 낙엽을 옮겨온다. 1월 한겨울에 눈이 아닌 낙엽이 발아래에 수북이 쌓이는 것을 멍하니 보니까 잠시 계절도 잊히는 거 같다.
하지만 추워. 추위도 물리칠 겸 지브리 외관을 찍기 시작했다.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내부를 촬영할 수가 없어서 외부라도 열심히 찍었다. 좀 더 크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은 많고 건물은 작아서 아쉬움이 있었다.

드디어 내부로 입장, 지브리 만화를 매우 좋아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오른쪽에 있는 방에는 지브리 영화가 조그마하게 상영되고 있었고 미니어처랑 많은 전시품이 내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유리창안에서 빙빙 돌아가는 만화 캐릭터들은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왼쪽 방에는 영화 상영관이 있는데 들어갈 때 받는 영화필름처럼 생긴 표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 표 필름에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작은 것에도 신경 쓴 것이 웃음을 준다. 스모 하는 쥐 영상인데 무성영화라서 외국인들도 너무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단편영화 한 편을 보고 위층으로 올라가 미와자키 하야오의 작품 관람을 하는데 일본 여고생들의 끊임없는 감탄사 '가와이'를 지겹게 들어야 했다. 뭐 캐릭터들이 아주 귀엽긴 하지만.
캐릭터 가게는 많은 인파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옥상으로 올라오면 작은 정원이 있는데 그 정원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의 거대 로봇도 서 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여기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나도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고 아이처럼 찍어댔다. 만화와 현실이 혼동되는 그럼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바로 움직일 것만 같은 모습과 정교한 묘사에 그 위엄까지 느낄 정도다.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고 나도 몇 장이나 찍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찍었다. 로봇 뒷길로 가면 작은 오솔길이 나오고 그 길 너머에는 작은 공터가 있다.
옥상에 내려와 길지 않은 지브리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다시 역으로 향했다.
역으로 향하는 길에 라면집이 여기에 왜 이렇게 많을까 싶은 호기심에 라면집 하나를 골라 들어가기로 했다. 나무로 된 문에 작지만 아기자기한 느낌을 라면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첫 젓가락을 뜬 순간 잘 못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맛이 없었다. 정말 맛이 없었다. 그냥 유동인구가 많아서 라면집이 많은가보다. 아 오늘은 라면 실패했다. 아까운 내 저녁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