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돌 한글날

2009. 10. 9. 12:06Doodling

훈민정음(훈민져ᇰᅙᅳᆷ, 訓民正音)은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지은 책의 제목, 그리고 그 책에서 해설하고 있는 뒷날 한글로 불리게 된 한국어의 표기 문자 체계를 말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훈민정음의 판본에는 크게 해례본(한문본), 언해본이 있고, 그밖에 예의본이 있다. 실록본이 있는데, 이는 예의본에 속한다. 이 가운데 완전한 책의 형태를 지닌 것은 해례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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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백과

한글 반포 8회갑을 기념
한글날 기념식을 처음으로 거행한 것은 1926년이다. 이 해는 1446년 한글이 반포된 이후 8회갑(480돌)이 되는 해였다. 기념식은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와 신민사의 공동 주최로 식도원(食道園)이라는 요리집에서 거행하였는데 수백 명이 참석하여 당시로서는 성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1926년에 기념식을 거행한 날은 10월 9일이 아니라 11월 4일이었다. 이 날이 음력으로 9월 29일이었기 때문이다.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을 책자로 완성했다는 실록의 기록에 근거하여 9월 29일을 반포한 날로 보고 기념식을 거행한 것이다.
기념식을 거행하는 중에 이 날을 부를 명칭이 있어야 하겠다는 의논이 나왔고 ‘가갸날’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에 한글을 배울 때 ‘가갸거겨’ 하면서 배웠기 때문에 ‘가갸날’이라고 한 것이다. 당시는 아직 ‘한글’이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이었다. 이후 여러 해 동안 신문 지상 등에서는 ‘가갸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는데, 차차 ‘한글날’로 부르게 되면서 ‘한글날’로 굳어지었다.
양력으로 날짜 환산
이처럼 음력 9월 29일에 기념식을 거행했기 때문에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는 날이 바뀌었다. 1931년에 들어 와서 모든 생활이 양력을 중심으로 삼는 데 비해 한글날은 음력으로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1446년 음력 9월 29일이 양력으로는 어느 날에 해당하는가를 계산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나온 날이 10월 29일이다.
양력으로 지내기 시작한 해는 1931~1932년 무렵이었다.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이희승과 이극로의 기록에 따르면 1932년부터 양력으로 지냈다고 하는데, 양력 계산 방법은 이미 1931년에 신문 기사로 소개되었고 또 1931년부터 양력으로 지내기로 했다는 신문 기사도 있다.
그런데 한글날의 양력 계산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져, 전문가와 전문 기관에 문의한 결과 양력 계산은 맞지만 그레고리력으로 계산하는 게 좋겠다는 일치된 의견이 나왔다. 율리우스력에 따르면 10월 29일이지만, 양력은 1582년 이후 그레고리력으로 바뀌었으므로 양력 계산을 그레고리력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날짜가 10월 28일이다. 그래서 1934년부터는 10월 28일에 한글날 기념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이극로의 기록에 따르면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는 기념식을 거행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기념식을 주관할 사람들이 모두 감옥에 잡혀갔다.
1945년부터 10월 9일에 거행
10월 9일에 공개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하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이후인 1945년부터이다. 한글날이 10월 9일로 된 것은 1940년 7월에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에 나오는 기록에 의한다. 이 책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에 9월 상한(上澣)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기록에 따라 9월 상한, 즉 상순(上旬)에 반포된 것으로 보고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다시 계산한 것이다. 공휴일로 지정된 것도 이 무렵인데,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출처: 새국어소식 제3호, 19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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